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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복지 정치*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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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복지 정치*

안상훈(서울대 교수)

1. 서론

밀러에 의하면 사회정의라는 것은 ‘권리’, ‘보상’, ‘필요’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며, 이들이 모두 갖춰질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공정한 사회라 부를 수 있다고 한다(Miller, 1976). 물론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혼합될 것인지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 세 가지 모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공정하고 선진적인 사회라는 것에는 이견을 제기하기 힘들다. 지난 시기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시장의 확립을 통해 ‘보상’을, 법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달성을 통해 ‘권리’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필요’와 관련된 부분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며, OECD 회원국 중에서 복지국가가 가장 낙후된 대표적 나라로서 체면을 구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야기 거리로서 복지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며, 각종 언론매체나 정치권의 설왕설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맞는 복지가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의 논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복지국가에 관한 정치권의 논쟁을 보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근거하는 복지국가가 현실에서 매우 간단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인 선전의 차원에서는 모르지만 실제로 보편적 복지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고 현실에서의 복지국가는 이러한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힘들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사회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고 필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념적 지향에 따라 한 나라의 복지정치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며, 복지에 관한 철학적 지향이 무엇인가에 따라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다양한 혼합이 가능하다. 일단, 복지국가에 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나눠보면,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 집합주의의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Barr, 2004). 자유지상주의는 보편복지를 반대하고 집합주의는 찬성하며 자유주의는 대체로 중간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먼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의 관점에서는 특정 공공재의 생산과 빈곤구제와 같은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국가 혹은 정부를 활용해야한다고 보는 강한 선별주의 혹은 잔여주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liberal)의 관점에서는 복지국가를 일정정도 수용한다. 이 관점에서는 개인맥락에서의 복지극대화를 중요시하며, 사적 재산권은 목표가 아닌 수단에 불과하다는 관점에 일정정도 동의하고, 적절한 수준의 분배정치를 수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보다 본격적으로 보편주의를 옹호하는 견해는 집합주의(collectivism)에서 나온다. 전통 맑스주의는 복지국가 자체를 전면 부정하지만 사회민주주의에서는 복지국가를 통한 적극적인 국가역할을 통해서 보다 광범위한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즉, 자본주의 시대는 민주주의 시대와 겹치기 때문에, 혁명이 아닌 민주주의적인 의회개혁을 통해서도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데 주목한다. 보편적 참정권을 잘만 이용하면 혁명이 아닌 의회 내 개혁을 통해서도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본계급에 비해 노동계급의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에 따른 투표행위를 할 수만 있게 되면 노동계급이 의회진출을 통해서 정치적 권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개별 국가의 이념적 분기는 결국 어떠한 복지국가가 공정한가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로 이어지고, 마침내 서로 다른 모습의 복지국가를 발달시켜왔다. 이렇게 보면 보편주의의 정도만으로는 공정한 복지를 평가하는 것이 의미 없거나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제 아래에서는 현실에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지 혹은 얼마나 구분하기가 어려운지 따져보고, 공정복지의 근간으로서 보편주의를 상정할 때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왜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되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개념적 논의에 더하여, 공정복지의 삼각요소들이 상이한 복지체제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있으며 각 요소와 관련된 성과지표들이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지, 과연 어떠한 모델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우월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말미에는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를 위한 개혁의 밑그림을 간략하게 제시할 것이다.

2. 현실에서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현존하는 어떤 복지국가도 모든 프로그램을 보편주의적인 방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실제에서는 교육불평등 문제 등과 같이 주로 기회의 평등과 관련된 것이 보편주의적 정책화되는 경향이 짙다. 동시에, 주거빈곤 문제 등 결과평등과 관련된 것은 대개 잔여주의적으로 해결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보편주의 복지가 비용이 매우 크게 소요되기 때문에, 사회성원들의 정치적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보다 쉽게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위주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어떠한 경우에도 개별 복지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보편주의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사회정책을 실시할 때, 수혜대상의 선정, 급여의 수준이나 내용의 결정, 기여조건의 적용 등에서 완전한 보편주의나 완전한 선별주의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경우 가장 일반적인 구분은 한 나라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느냐의 여부와 관련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갑론을박 중인 무상의료나 무상급식의 경우에도 완전한 보편주의라고 보기는 힘들다. 북유럽 복지국가 모형의 특징으로서 보편주의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다수 사회정책 프로그램들도 완전한 보편주의 방식에서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보편주의’라 하더라도 대개의 경우 보편적 수혜를 지향하되, 구체적인 정책내용에서는 다분히 선별적인 요소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편복지를 무상복지와 동일시 할 수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정치적 수사로서 구사할 경우, 비생산적인 허위논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선별주의라는 개념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허위논쟁으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다.

첫째, 보편주의가 기여와 급여의 측면에서 완전히 보편적일 수 없는 이유는 흥미롭게도 선별주의가 보편주의의 완화된 형식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선별주의가 보편주의를 일정정도 포함하면서 긍정적인 차별을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선별주의는 예컨대 복지를 전국민을 대상으로 제공하면서 빈곤층과 같이 욕구가 더 강할 경우 ‘보충적’인 급여를 더해주는 이른바 보충주의를 의미할 수 있다.

둘째, 개인이나 사회집단의 개성을 존중하거나 현실상황을 고려하여 ‘분별적’인 방식으로 보편주의가 완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최저수준의 욕구를 전국민에게 동일하게 보장하면서도 부담능력에 따라 기여율을 달리 설정하는 경우, 무상급여는 아니면서 나름대로 공정한 방식의 부담체계를 만들 수 있다. 부담능력을 분별 있게 고려한다는 면에서 기여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한 선별주의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게 된다. 이것은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베버리지 보편주의의 ‘정률기여 및 정액급여 원칙’이다. 스웨덴의 소득비례연금도 완벽한 보편주의 기초연금만으로는 적절성 제고가 곤란하여 분별적 선별주의를 부가한 사례이다. 분별적 선별주의가 보편주의를 긍정적으로 완화하는 예는 그밖에도 많다. 예컨대 아동보육의 욕구에 대하여 균질한 보육서비스를 전국민에게 제공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한편으로는 공공부문의 보육인프라를 통해 직접서비스로 제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육료지원을 통해 기존 민간서비스를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 이는 보육의 균등한 질을 담보할 수만 있다면 일정 수준의 보육을 전국민에게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보편주의의 완화된 형식일 수 있다. 개인의 개성에 따른 선택을 존중하여 분별적으로 제공하는 긍정적인 선별주의인 것이다.

셋째는 복지를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일방적 배려로 인식하는 ‘잔여적’ 복지인데, 이 경우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게 담겨있는 선별주의가 된다. 예컨대 잔여주의적 복지는 빈민을 주대상으로 하면서 안 줘도 될 복지를 준다는 의미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선별주의는 어느 계층에도 적용될 수 있고, 완전한 보편주의보다 더 사려 깊은 맞춤형의 복지를 의미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보편주의에 관한 천착은 개념적 허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실제 복지정책의 적용과정에서는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긍정적인 조화가 오히려 국민의 복지에 더 도움이 되고, 공정한 복지에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권리와 의무, 공정한 복지의 양대 기둥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복지급여에 관한 논쟁이 무척 뜨겁다. 특히 보편복지가 무상복지와 동일시되면서 어떤 사람들은 복지란 것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 절에서는 복지란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상’으로 제공되기 힘든 것이며, ‘무상’으로 제공되는 복지란 것이 있다고 해도 본격적인 권리가 될 수 없거나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러한 이슈와 관련된 논의의 출발점은 공정성의 기초로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경구이다. 그것은 바로 ‘의무 없이 권리 없다’라는 기본적 윤리이다.

복지를 하나의 권리로 보는 대표적인 관점은 마샬의 시민권론이다(Marshall, 1950). 그에 따르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리를 잡게 되는 시민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내용을 축적적으로 발전시킨다고 한다. 초기에는 법 앞의 평등이 강조되는 공민으로서의 권리를 의미하여 점차 그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할 권리의 보장을 포함하게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헌법적인 권리로 대접받는 내용들이다. 마샬은 이에 더해, 20세기 이후의 시민권에는 사회권이라는 것이 더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복지국가들은 사회권이 완전히 정착하기 이전에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지금 이 순간, 선진국에서 조차 사회권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공민권이나 정치권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예컨대 연금급여에 관한 사회권은 필요하다면 축소할 수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참정권의 자유가 축소될 수 없음에 비하면 사회권이 진짜 시민적 권리라고 할 수 있는지 조차 자신이 없어진다.

아마도 현실에서 보편주의를 주장하고 복지가 시민적인 권리가 될 수 있다고 각인시켜온 것은 사민주의 정치인들이다. 지난 세기에 유럽의 정치인들은 강력한 노동운동의 지지를 업고 복지에 관한 권리를 착착 더해갔었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복지가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세금납부를 통한 대중적 부담배분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세금을 조금이라도 내도록 세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복지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적든 많든 모두가 공정하게 분담하여야 복지에 대한 권리주장이 타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면세점이 높아서 실제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복지를 유지하기 위한 국민적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소수의 세금만으로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복지국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유럽 좌파에서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복지국가에 관한 지지는 권리와 의무에 관한 개인들의 지위조합에 따라 달라지고 의무보다 권리가 강조될수록, 즉 공짜복지를 준다고 약속할수록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은 극대화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복지를 권리의 반석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의무로서 조세부담을 하는 계층과 권리로서 복지급여를 누리는 계층을 양분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그러한 체제에서 전국민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복지정치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금을 내지 못하는 빈민에게만 시혜적 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주의 복지국가에서 복지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복지정치가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기본적인 요건은 권리와 의무가 공정하게 조합되는가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공정한 복지국가에 관한 권리와 의무의 조합문제를 앞 절에서 살펴본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논의와 연결시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래에서는 권리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급여의 수혜대상과 급여할당, 그리고 의무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여조건으로 나누어 어떠한 조합이 있는지 알아보자.

3.1. 권리(1): 누구에게 복지를 줄 것인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보편주의의 의미는 ‘전체인구’를 급여대상(coverage)으로 복지를 실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인구가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민이나 노동이동이 증가하는 최근의 현실에서 보자면 시민권만으로 수혜대상을 한정하는 것만으로는 보편주의가 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유럽연합국민이 아니더라도 1년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을 복지의 수혜 대상에 포함하기도 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스펙트럼에서 급여대상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하위분류가 가능하다. 이러한 여섯 가지의 분류법은 상황에 따라 순서가 조금 바뀔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현존하는 복지제도를 구분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급여대상이 보편적일수록 권리로 인식되기 쉬우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시혜 혹은 배려차원의 복지에 가까워진다.

첫째, 복지권의 대상으로서 급여대상에 ‘거주자’를 모두 포함하는 경우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보건서비스와 같은 것이다. 일정정도 거주기간의 요건만 채우게 되면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있어, ‘전국민’을 넘어서 ‘전체거주자’로까지 급여의 대상이 확장된 사례이다. 현존하는 모든 제도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복지제도에 해당한다.

둘째,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이다. 여기서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시민권을 복지급여대상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게 된다. 영국의 국민건강서비스제도(NHS)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셋째, ‘특정연령층’에 들기만 하면 복지의 급여대상이 되는 것으로 ‘데모그란트(demogrant)’라고 불리는 제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1998년 연금개혁 이전 스웨덴에 존재하였던 기초연금이나 복지선진국 다수에서 실시하고 있는 아동수당 등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 노동시장참여자를 급여대상으로 하여 강제적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사회보험의 형태로 제공되는 복지급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급여대상을 설정하고 있는데, 노동시장 상황이 균질적이고 완전고용에 가까울수록 보편적인 급여가 된다. 하지만 예컨대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 자체가 양극화되어 있고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을 반영하여 복잡다단하게 구성되어 있을 경우 다양한 사각지대가 발생할 여지가 크고 따라서 보편주의에서 멀어지게 된다.

다섯째, 거의 대부분의 국민을 급여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소득조사를 통해 최상위계층을 제외하는 경우가 있다. 호주의 공적 연금제도나 우리나라 일각에서 제안하고 있는 ‘70% 복지’가 이에 해당한다.

여섯째, 자산조사를 통해 빈곤선 이하의 최하위계층만 골라내서 급여의 대상으로 하는 공공부조 혹은 사회부조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산조사를 통해 소득인정액을 구하고 이것이 최저생계비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만 급여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인 제도이다. 한 때, 누구라도 빈곤해지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이를 보편주의라고 선전하기도 하였지만, 적어도 실제 급여대상의 범위가 가장 협소하고 부정적인 의미의 선별주의에 가장 가까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3.2. 권리(2): 똑같이 줄 것인가, 다르게 줄 것인가?

앞에서 말한 급여대상은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얼마만큼 어떻게 줄 것인가, 즉 급여할당(allocation)과 관련된 권리적 차원을 살펴보자. 제공하는 급여의 수준(adequacy) 혹은 질(quality)이 유사할수록 보편적인 급여제공이며, 수준 혹은 질에 차이가 날 경우는 선별적인 급여제공이 된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선별주의적으로 급여대상을 정할수록 급여의 질은 차이가 나게 된다. 급여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면 아예 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급여의 수준 혹은 질이 ‘0(없음; 無)’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급여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하면,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급여할당방식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급여수준을 동일하게 하는 경우, 즉 ‘균등급여’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데모그란트로서 아동수당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국민이면서 몇 살 이하의 아동이기만 하면 월 30만원을 정액의 현금급여로 지급하는 경우이다. 소득과 부의 수준에 따른 고려를 하지 않고 대상자에게 균질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균등급여를 제공하는 예이다.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정액급여를 강조한 베버리지가 이러한 급여할당을 지지하는 대표주자다. 그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반드시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는 세금을 엄청나게 걷을 수 없는 한,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의 수준이 낮아지게 되고, 적절한 최저생계 보장마저 힘들게 된다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전면적인 ‘무상의료’를 실시하려면,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급격히 증가시키든지 아니면 제공되는 의료의 질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나 집단의 특성에 따라 급여의 질에 차등을 두는 경우가 있다.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 부담을 달리하고 그에 맞추어 보험급여 수준을 달리 하는 소득비례보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하면서도, 장애여부에 따른 욕구에 비례하여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이라는 차등적인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종류의 긍정적 차별급여는 반드시 모든 욕구를 동일시해서 모든 이를 동일하게 취급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스카치폴은 이러한 방식의 긍정적인 차별조치를 ‘보편주의 아래서의 표적화(targeting within universalism)’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정액할당에서는 급여가 소득과 상관이 없게 되므로 욕구가 반영되지 못하는 것에 비에 이러한 방식에서는 개성과 욕구가 매우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되, 정액할당을 고집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차별(positive differentiation)을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컨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분별주의에 따르면, 태생적 한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보상하기 위해 분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양한 보상조치를 마련한다. 기회평등과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가 실시를 주도한 지역균형선발제도, 미국 대학교들의 흑인장학생제도, 몇몇 나라에서 비공식적으로 시행 중인 여성의원할당제 ‘적극행동(affirmative action)’ 정책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사회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공박하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가 여전히 가부장제에 기초하고 있어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공정성 실현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성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긍정적 차별 정책이 실시된다면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데, 이는 공정하고도 생산적인 개혁 조치가 된다.

공공부조의 경우에도 이러한 종류의 긍정적 선별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데, 욕구의 다양성에 따라 급여내용의 차별화 혹은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파악하는 일반급여에 해당하는데, 집단이나 개인의 특성에 맞춘 범주급여나 개별급여로 전환하게 되면 공공부조 내의 긍정적 차등급여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3.3. 의무: 누가 얼마나 부담하게 할 것인가?

사회적 권리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적 의무 배분이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복지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물적 자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민들로 하여금 복지재정에 어떻게 기여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이다.

복지급여에 대해 어떻게 기여(contribution)를 하도록 하는가에 따라 크게 다음과 같이 둘로 갈린다. 단, 기여에서의 완전한 보편주의는 유상급여 즉 돈을 내고 급여를 받는 것이 되므로 시장적 기제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복지국가와는 상관이 없게 된다.

첫째는 기여를 하지 않고도 급여를 무상으로 받는 경우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간접적으로는 누군가가 그에 대한 부담을 하게 된다. 어쩌면 본인이 알게 모르게 세금으로 더 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주장으로 무상급식이냐 부자급식의 논쟁이 있지만, 모두 부적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중산층 이상을 보면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무상급식’이 아닌 경우가 많을 것이고 부자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게 되기 때문에 부자에게 공짜로 주는 ‘부자급식’도 아니다. 의무와 권리를 공정한 방식으로 조화시켜야 복지에 관한 권리가 더욱 진작된다한 것을 되새겨 보자. 세수기반을 넓히지는 않고 중산층 이상에게 부담을 오로지 전가할 경우에는 권리성이 취약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기여 방식은 문제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

둘째는, 차등적으로 기여를 직접 분담하는 정률기여방식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회보험료를 부담능력에 따라 달리 하는 경우이다. 사회서비스에 대해서도 서비스 이용료를 차등으로 부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빈곤층의 서비스 이용료를 ‘0’으로 해줄 경우 제도 전체적으로는 준무상방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 수혜자 부담원칙이 지켜지면서 부담능력에 따라 동일한 급여에 대해 부담을 달리하므로 전체적인 공정성도 제고될 공산이 크다.

복지급여에 대한 부담방식을 다른 차원에서도 논할 수 있는데, 세대간 의무배분의 공정성문제가 그것이다. 현존하는 복지재정방식을 살펴보면 부담을 동세대가 세금이나 이용료를 통해 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국채발행을 통해 증세는 피하면서 부담을 다음세대에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 국채발행이 재정건전성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로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이 공정한가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고령화에 따라 세대 간 재계약이 필요한 것은 세금이냐 국채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연금의 경우 적립방식으로 하는 경우와 부과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후자는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후세대의 부담이 폭증한다. 다음 세대의 상황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그들이 동의할 것이라 가정하고 세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의무배분방식을 확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우리 세대의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복지국가를 설계하는 것은 가히 ‘동의의 환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낮은 방식의 현금급여를 개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후세대에 대한 불공정한 의무전가가 될 수 있다고 보면, 세대간 기여계약의 문제는 엄청난 부조리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노인을 위한 연금 수준의 적절성에 지나치게 매달려온 일부 국가들의 경우를 보자. 그들의 경우, 저출산과 같은 신사회위험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예산제약의 주범이 연금이라는 구사회위험에 대한 경직성 지출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복지급여에 관한한 세대간 의무 재분배문제는 뜻하지 않게 상당한 불공정의 온상이 될 수 있다. 고령화에 관한한, 후대의 상당한 생산성을 미리 준비할 수 없다고 하면, 세대내 재분배를 위주로 그 세대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 공정한 복지전략의 체제별 분기와 성적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편과 선별을 어떻게 조화하느냐, 혹은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조합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본연적으로 문화적임과 동시에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정의 혹은 공정사회에 관한 모습은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동일할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상대주의를 넘어서서 대략적으로라도 공유될 수 있는 복지국가의 가치들을 따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주로 공정사회를 이루기 위한 복지국가의 벽돌들을 이모저모 따져보았다면, 이 절에서는 공정사회의 핵심적 요소들에 관한 경험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상이한 복지국가 전략의 공과를 총체적인 면에서 타진해보기로 하자.

4.1. 공정복지의 실천적 의미와 세 가지 복지전략

사회정의에 관한 윤리적 차원의 이론적 논의들이 극과 극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자본주의가 순수한 형태인 경우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논의는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일갈하였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고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사자에게 밥 주는 것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칸막이를 만드는 복지국가의 역할이 필요해진다. 이렇게 보면, 중요한 것은 좋은 칸막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하는 것이고, 현존하는 다양한 복지전략을 공정사회의 잣대에 견주어 비교해보는 것은 우리의 것을 만들기 위한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복지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에스핑 안델센은 세 가지 유형의 복지전략을 구분하였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 이념에 따른 각각의 복지체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매우 상이한 특성을 지니면서 구분이 가능하다(Esping-Andersen, 1990).

먼저, 북유럽형 보편주의 복지전략인 사민주의 체제는 보편주의를 기조로 해서 시민권에 기초한 사회보장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체제에서는 현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본적 욕구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시에 이 체제는 성평등적이며 노동운동의 전통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음으로, 대륙유럽형 보편주의 복지전략인 보수주의체제는 사회보장 체계가 산업 부문별로 분절되어 있으며, 고용을 중심으로 해서 포괄적인 현금이전의 형태로 사회보장이 이루어진다. 이 체제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제가 강하여 본질적으로 남성부양자모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다음으로, 영미형 선별주의 복지전략인 자유주의체제는 부정적 의미의 선별주의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매우 부분적인 욕구만을 공공부조 중심의 복지를 통해 해결하며 사회보험이나 사회적 서비스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충족되지 못한 복지 욕구는 시장에서의 사적 보험이나 사적 서비스의 구매를 통해 해결하는 시장중심적인 체제이다.

이와 같이 복지전략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인간들과 집단들에 대해서 어떤 면은 동일하게 대우하고 어떤 면은 상이하게 대우하느냐와 관련된 복지제공에서의 선택들이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것임을 의미한다(김기덕, 2002). 우리는 이미 앞에서의 논의를 통해서 자유지상주의로 갈수록 상이성에 입각한 대우를 강조하고, 집합주의로 갈수록 동일성에 입각한 대우를 강조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실제 수용 가능한 공정복지의 모습은 양자의 중간 지점에 위치할 가능성 농후하다. 문제는 인간과 집단들의 동일성과 상이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대로 찾는 것이다. 결국 실천적인 공정복지의 준거는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도록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별히 불평등한 처우가 요구될 경우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Frankena, 1973; 김기덕, 2002에서 재인용). 어떤 사람은 사과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오렌지를 원하는데 평등의 이름으로 사과나 오렌지를 획일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개별적인 욕구(needs)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옳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적인 혹은 중도적인 입장을 전제로 한다면, 공정한 사회의 복지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녀야 할 것이라 기대된다. 첫째, 기본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이 확고하게 담보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도 사회적 약자에게로의 분배가 좀 더 넉넉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는 중산층을 지켜내고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의 공정성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자유를 충족하거나 한 사회의 총복지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을 되도록 풍족하게 확보하여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율에 입각한 창의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국가는 사회정의 고양을 위해 정의로운 수준의 조세를 통해 재분배를 시행하는 등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권리와 의무가 조화롭게 대응되는 방식으로 사회보장을 설계하여 정치적으로 수용되는 재원마련을 담보하여야 한다. 이제 아래에서는 이러한 공정복지의 몇 가지 준거를 바탕으로 해서 현존하는 세 가지 복지전략들의 성공과 실패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4.2. 다양한 복지전략의 성공과 실패

세 가지 복지전략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로 나누어 보면 북유럽과 대륙유럽형이 보편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영미형이 주로 선별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보편주의는 선별주의보다 돈이 많이 든다. 아래 <그림1, 2>에서 확인 가능한 것처럼, 보편주의 유형에서 선별주의 유형보다 복지지출 규모가 두 배 가까이 크고 따라서 국민부담 수준이 훨씬 높다. 요컨대, 지속가능한 공짜복지란 가능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전략은 크건 적건 그 규모에 맞는 국민부담을 전제로 한다.

우선, 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얼마나 감소시키고 있는가를 따져보기로 하자. 사회의 약자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이 공정하다는 점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있기 힘들고, 따라서 이는 공정한 복지의 주요 항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림3, 4>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평등은 두 종류의 보편주의에 비해 선별주의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지지출 수준을 작게 유지하면서 결과적인 면에서의 평등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복지제공을 빈곤한 계층에 집중할 경우 대상효율이 증대되어 불평등이 효과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정책지향은 적어도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을 살리려면 복지국가를 되도록 작게 하면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에 존재하는 복지전략들을 비교할 경우 타당하지 못하다는 점이 확인된다. 요컨대, 불평등 제거나 양극화 감소를 위해서는 복지지출이 상당히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복지국가를 지속하기 위해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경제적 성과를 비교해보자(<그림5, 6> 참조). 한 때의 복지를 위해 미래의 총복지를 위한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공정치 못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항목이다. 이와 관련, 복지국가에 관한 반대논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복지가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어 생산의 발목을 잡는 다는 주장일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회지출과 국민부담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적 성과는 낮아져야 한다. 단, 비교에 포함된 나라들이 서구 선진국들이기 때문에 성장률 지표의 경우 개도국과 비교해서 낮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여기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사실은 복지지출을 적게 하는 영미형의 성장률이 높기는 하되, 북유럽의 성장률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똑같이 복지에 돈을 많이 쓰는 보편주의를 택해도 반드시 성장률이 낮아지지는 않는 것이다. 실업률의 지표를 비교해보다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경제적 성과를 좀먹지 않는 복지전략이 후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의 복지총량을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공정한 복지의 잣대라고 한다면, 적어도 대륙유럽형의 보편주의는 좋은 평가를 주기 힘들다.

이러한 결과는, ‘복지병’, 즉 복지를 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된다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수준으로 복지에 돈을 쓰더라도 대륙유럽형과 북유럽형은 경제성과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왜일까? 전통주의적 복지국가에서는 사회서비스를 강화하든 현금이전에 집중하든, 소극적 기제에 집중하든 적극적 기제를 동원하든, 동일한 욕구에 대한 기능적 등가물(functional equivalences)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인식하에, 행정적인 면에서 보다 관리가 용이한 방식인 현금이전형과 소극적 소득보장방안이 주로 채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효수요와 관련될 때, 두 가지 프로그램 방식 간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소득이 일정할 경우 사회서비스를 통해 욕구가 해결되는 것도 가처분소득의 증가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여러 연구들에서 암시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금 대 서비스 혹은 소극적(비활성적) 대 적극적(활성적) 등 ‘대안적 관계’에 있는 프로그램들 중에서 어떤 것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경제적인 면에서의 상이한 효과가 기대된다. 즉, <그림 7>에서 보이는 것처럼, 북유럽과 대륙유럽은 총량적 복지지출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현금과 서비스 수준이라는 구성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노정하며, 이에 따라 경제적 성과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효수요창출이외에도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의 중요한 차이가 이들 대안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Huber and Stephens, 2001; Esping-Andersen et al., 2002; 안상훈, 2005; 백승호, 2005; 홍경준, 2005). 공공 사회서비스나 활성화를 염두에 둔 적극적 기제들은 인적자본 양성과 고용창출에의 보다 직접적인 효과 등, 다음과 같은 효과들을 추가로 가지기 때문에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더욱 클 것이라 예상된다(Esping-Andersen et al., 2002; 안상훈, 2002).

첫째, 사회서비스나 적극적 기제의 강화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보다 직접적이다(김혜원·안상훈·조영훈, 2005). 사회서비스는 인간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무형의 급여이다. 사회서비스가 늘면 자동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가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서비스 자체가 노동공급 총량을 늘이는데 기여하게 되는 이중적 효과를 지닌다. 노동공급의 증가와 새로이 창출되는 사회서비스의 일자리 창출은 한 사회의 생산증가에 직접 기여하게 된다.

둘째, 사회서비스의 발달과 적극적 기제의 활용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효과를 지닌다(안상훈, 2005). 특히 모든 선진국가의 경제가 지식기반 사회화된 세계화시대에, 사회정책의 인적자본투자가 지니는 성장기여적 성격은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공공주도형 사회서비스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창출한다(김흥종·오영범·신정완, 2006). 보육, 양로,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속성상 시장에서의 대규모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개별 시설별로 소규모화 되는 경향이 크다.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는 공공주도형 사회서비스 체인화 전략은 서비스구매의 총비용을 감소시키고 다른 소비를 진작시키는데 사용되어 궁극적으로 생산에 이바지하게 된다. 동일한 비용으로 높은 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데, 예컨대 체인화 등을 통해 불필요한 중복투자를 피하고 규모의 경제를 담보하는 공공사회서비스 전략이 필요하다.

넷째, 사회서비스 혹은 적극적 기제의 활용은 예방적 가치재의 선택을 촉진한다(김흥종·오영범·신정완, 2006). 부정적인 비용지출이 예상될 경우 예방적인 성격을 지닌 가치재를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예방적인 가치재의 선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농후하다. 경제주체들의 단기적 손익계산 경향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 이러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경우만이 예방적 가치재의 선택이 이루어지고, 이 역시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종국적으로 생산에 기여하는 경로가 된다.

다섯째, 사회서비스와 적극적인 활성화 기제의 활용은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한다(안상훈, 2005). 사회서비스, 특히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같은 고용보장서비스는 노동수급을 적절히 조정함으로써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 구조적 실업자에 대한 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이 균형적으로 함께 이루어질 경우, 산업구조조정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정리해고와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로 인해 적시에 이루어지는 산업구조조정은 당연히 생산적 성격을 지닌다.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잣대와 관련되면서도 따로 이야기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잣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복지를 공정하다고 느끼면서 복지에 필요한 돈을 흔쾌히 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사회지출수준이 높으면 국민부담이 당연히 커지고, 국민부담이 커지면 국민들의 복지에 관한 조세저항이 커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간 비교가능한 조세저항지표를 구성해서 살펴보면 예상과는 다른 다음과 같은 관찰이 가능하다(<그림 8>참조).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국민부담이 큰 북유럽형에 비교해서 가장 부담수준이 낮은 영미형에서 조세저항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북유럽 국민들이 앵글로색슨계 국민들보다 착하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복지를 선별주의적으로, 아니 잔여주의적으로 실시할 경우에 발생하는 정치사회적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호주의 예에서와 같이, 확장된 공공부조라고 할 수 있는 소위 ‘70% 복지’를 시행하는 경우 조세저항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70%는 싼값으로 혹은 무상으로 복지혜택을 누리는 반면, 30%는 세금만 내면서 공공복지로부터 소외되기 때문에 30%의 조세저항이 거세질 공산이 큰 것이다. 오히려 미국과 같이 빈곤층에만 무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주의에서는 복지정치가 1:9로 나뉘더라도, 90%의 국민들이 복지에 필요한 세금부담을 도맡으면서도 ‘불쌍한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약간의 돈’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그렇다면 북유럽과 대륙유럽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거의 모두가 부담을 하면서 모두 다함께 복지를 받는 것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 사이에도 조세저항의 모습이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앞서 <그림 7>에서 본 것처럼, 총지출보다 지출 구성에 주목할 경우 해석을 위한 약간의 실마리가 확보된다. 대륙유럽형은 주로 연금이나 실업보험 등 현금으로 이루어진 급여를 중심으로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복지급여를 받기까지는 보험료만 내면서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 이른바 ‘잠재적’인 혹은 ‘유보된’ 수급권인 것이다. 반면, 북유럽형에서는 현금 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 건강, 주거, 고용 등의 분야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서비스는 이용을 위해 돈을 부담해야 하기는 하지만 매우 ‘가시적’이고 ‘일상적’으로 급여를 향유하게 된다는 면에서 대륙유럽의 현금급여와 차이가 난다. 부담과 동시에 혜택이 주어지는 일상적 급여를 위주로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경우 부담수준과 상관없이 조세저항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총평컨대, 복지국가의 조세저항은 총복지지출이나 국민부담률의 크기와 반비례하거나 혹은 상관없는 경향이 있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수혜자의 폭을 확장할 경우에는 조세저항의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5. 분별주의(discretionary)방식을 적용한 한국형 생활보장체계로의 개혁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복지전략을 새로이 가다듬기 위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형식적인 면에서 북유럽형 보편주의가 가장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복지국가의 배경이 되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해답은 될 수 없다(Ahn, 2000). 스웨덴 같은 나라마저도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둘째, 공정한 복지의 여러 측면 중에서 어떠한 것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보편주의가 답일 수도 있고 선별주의가 답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흑백논리를 뛰어 넘어야만 한국형 전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적인 면에서 한국형 복지전략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소득보장’에서 ‘생활보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여야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욕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담보하는 수단을 소득보장에서 서비스보장과 소득보장을 아우르는 생활보장으로 전환한다는 의미이다. 소득보장전략은 주로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수단이었으나 최근 정치·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유럽의 개혁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즉, 사회서비스 보장을 강화하는 생활보장전략은 새로운 한국형 복지국가의 수단적 전략으로 백분 활용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복지개혁 전략은 <그림 9>에서 제시된 바와 같은 사회서비스 중심의 다층적 생활보장 안전망 구축으로 요약된다. 현재의 분절적인 안전망은 사각지대와 중복지원의 가능성을 상존시키는 모형으로서 시급한 개선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애주기적 기본적 욕구(global needs)에 대한 ‘일반적 생활보장’과 특수한 욕구(specific needs)에 대한 ‘범주적 생활보장’을 동시에 고려한 다층 안전망으로의 구조조정을 제안할 수 있다.

예컨대, 1차 안전망은 생애주기적 기본생활 욕구에 대한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를 지향하되, 국민적 부담동의와 국가경제적 여력에 부응하는 선에서 초기에는 취약계층이나 중산층까지에 대한 적용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급여 측면에서는 보편주의적인 방식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서비스에 대한 소득수준별로 ‘차등이용료’ 방식을 사용하여 무상급여가 가져오는 재정적 부담을 피할 필요가 있다. 차등이용료를 도입할 경우, 수익자부담원칙의 견지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고 낙인을 방지하며, 무엇보다 직접적인 국가재정의 절감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차 안전망은 생애주기적 기본생활 욕구에 대한 소득보장으로서, 사회보험형 공적 현금급여로 구성한다. 기본욕구에 관한 정책대응을 사회서비스형 1차안전망이 상당부분 소화할 것이므로, 정책적 사각지대를 줄이면서도 재정부담은 크게 늘리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 전망한다.

3차 안전망은 생애주기적 기본생활 욕구에 대해서 일정부분 민영화된 소득보장, 예를 들면 퇴직연금과 민간연금보험으로 구성한다. 이는 부담에 대한 공정성과 급여 수준의 적절성이라는 면에서 중산층 이상의 욕구를 수용하고, 시장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문이다.

4차 안전망은 3차 안전망까지의 다층 기제를 통해서도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질, 취약계층의 잔여욕구들에 대한 범주형 공공부조로 구성한다. 이는 대표적인 사회적 취약그룹들, 예를 들자면 저소득층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실업자 가구에 대한 특수한 사회서비스에 더하여 보충적으로 제공되는 현금급여로 구성한다. 무엇보다, ‘자격 없는 빈자(undeserving poor)’논쟁에 휘말리기 쉬운 근로빈곤층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가적 고용서비스와 결합된 ‘실업부조’ 등의 형태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욕구의 종류에 따라 복지의 보편적 적용을 완화하는 다양한 분별적(discretionary) 조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보편주의는 잔여적(residual)인 선별주의의 반대말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보충적(supplementary) 부가급여의 형태로 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탑다운 정책은 시민들의 협력적 잠재성을 저해하고 개별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보편주의만을 주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보충적인 방식으로 완화된 보편주의 혹은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맞춤형 조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differential equality)’을 염두에 두고 개성 있는 인간 욕구의 다양성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복지를 공공재라고 한다면, 공공재의 대상이 되는 욕구에 따라 분별 있는 맞춤형 조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재이며, 둘째는 노동시장 참여자를 기반으로 하는 공공재, 그리고 셋째는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본욕구와 특수욕구를 잘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소득수준만으로 복지의 대상을 정하는 경제적 욕구평가에서 벗어나 개인과 집단의 욕구차이를 진단하는 전문적 욕구평가로의 정책적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방식의 복지를 추구하건 간에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공정복지의 기본원칙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지수준에 걸맞은 방식으로 복지비용을 적절하고 공정하게 분담하는 일이다. 비록 여기서 이 문제를 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이러한 부담에 동참하도록,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담되도록 부담에 관한 제도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부담의 약속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에서 좋은 복지국가의 첫걸음이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좋은 복지, 공정한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는 우리사회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조화롭게 구성해낼 경우에만 약속되는 합리성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복지 세미나 자료집